탄탄한 하체에 부드러운 승차감 선사, 가속력도 만족
트랜드 맞춘 안전·편의사양, 가격은 비교적 높아 보여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포드 레인저 와일드 트랙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포드 레인저 와일드 트랙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픽업트럭 타고 장거리 여행은 무리다. 시승차를 요청하며 애초 계획은 서울-부산까지 달려볼 작정이었다.

넓디넓은 대지를 달리는 데 특화돼 있고, 여의도 몇 배 면적의 옥수수밭도 타고 달리며 관리한다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픽업트럭을 경험해보는 데는 장거리 여행만 한 게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작 달려봐야 대여섯 시간이면 가는 작은 땅에 불과하지만, 빌딩 숲에서부터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 오색 단풍 구경까지 다채로운 풍경들이 있다.

오프로드 체험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포트홀이나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다는 과속방지턱들까지 곳곳에 공사 구간들이 즐비하고 험악한 도로들도 적지 않다.

픽업트럭 승차감을 파악하는 데 따로 험로를 찾지 않아도 충분하고 국내 소비자들이 자동차 고르기가 까다롭다고 소문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진흙탕이나 모래밭을 경험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 이번 시승에서는 제외시켰다.

레인저 지상고와 타이어 사이즈, 진출입각을 제원으로 살펴보더라도 굳이 체험하지 않아도 알 거 같은 분위기다.

목적지는 부산이었지만 연휴 기간에 탈수도권을 시도하다가 출발 전부터 이미 진을 다 뺐다.

장장 두 시간 동안 도시를 벗어나지 못했고, 높은 자리에 앉아 멀리 바라보면 차량 행렬이 끝없이 펼쳐진 걸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 9일 목적지를 바꿔  속초로 향했다.  

◇ 국내 수입 픽업트럭 전성기

포드 레인저는 정식으로 국내 판매하는 세 번째 수입 픽업트럭이다.

수입 픽업트럭 첫 번째는 쉐보레 콜로라도다. 터주대감 쌍용 렉스턴 스포츠에 도전장을 내던진 차다.

승차감과 주파 능력 등을 생각해보면 3000만 원대 찻값에 가성비가 넘치는 모델이다. 지난달에는 수입차 베스트 셀러에도 올랐다.

사실 이들 차량은 미국 전통문화를 전달하는 전도사와도 같다.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성격이기도 하다. 

원래 모험과 탐험, 개척이라는 역할은 ‘오프로드’라는 멋진 슬로건으로 ‘지프’ 브랜드가 독점하고 있었다.

랭글러를 앞세워 국내에서 오랜 시간 재미를 봤다. 크지 않은 볼륨이지만 웅장한 자체만으로 존재감이 남달랐다.

지난해에는 지프 브랜드에서 국내 두 번째 수입 픽업트럭인 글래디에이터를 출시했다. 다만, 글래디에이터는 정통 픽업트럭으로 분류하기가 모호하다.

랭글러 후광으로 오프로드 이미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럭베드나 최대 적재 능력도 다른 픽업에 비해 부족했다.

견인 능력도 마찬가지다. 디자인도 비슷하니 랭글러의 파생 버전으로 볼 수밖에 없는 탓이다.

포드 레인저는 쉐보레 콜로라도를 라이벌로 지목했다. 이 라이벌 구도는 미국에서도 똑같다. 중형급 픽업트럭 시장에서 레인저와 콜로라도 경쟁은 치열하다.

해당 세그먼트에서 1, 2위를 나눠 가진다. 지난 4분기 미국에서 포드는 9만 대, 콜로라도는 12만 대 이상이 각각 팔렸다.

이 수치는 엎치락뒤치락 그때그때 바뀐다. 닛산이나 토요타 등 일본 브랜드 픽업들이나 지프 글래디에이터도 이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있다.

포드 레인저 와일드 트랙 트럭배드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포드 레인저 와일드 트랙 트럭배드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 덩치와 다른 부드러운 승차감

수도권 정체 구간을 겨우 벗어나 고속도로에 차를 얹으며 레인저의 부드러운 주행감에 사뭇 놀랐다. 이는 괜찮은 SUV에 앉아 있는 느낌과  같았다. 

사실 정체 구간에서는 이런 주행감을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들 상태에서는 떨림이 생각보다 심했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덜컥거리게 만드는 오토 스타트 스톱 기능 탓에 온몸에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굳이 승자를 가리려는 건 아니지만, 도심 구간에서는 콜로라도가 더 낫다는 판단이다.

콜로라도는 가솔린 엔진을 얹고 있다. 물론 레인저도 미국 모델은 모두 휘발유 엔진을 달고 있다.

국내 들어오는 레인저는 포드가 유럽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디젤 엔진 모델이다.

고속도로에서 레인저와 콜로라도는 승차감에는 큰 차이는 없지만 일단 연비 효율성 면이나 넘치는 파워 면에서는 디젤 엔진을 얹고 있는 레인저 쪽이 더 유리하다.

효율성에 승차감을 양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연비를 크게 걱정 안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유럽과는 달리 도로 상태 역시 괜찮은 편이라는 것도 일부 작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 픽업트럭은 역시 '디젤 엔진'

국내 판매하는 레인저는 와일드 트랙과 랩터 모델로 나뉜다. 두 모델 모두 유럽 전략형 디젤 엔진이다.

와일드 트랙은 픽업트럭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고 랩터는 거기에 오프로드 성향을 추가한 것이다.

꼬랑지에 모래를 흩뿌리며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게 랩터라고 할 수 있다.

시승차는 랩터보다는 1000만 원 정도가 더 저렴한 와일드 트랙이다.

하지만 두 모델 모두 제원상 최고출력 213마력, 51.0kg·m의 최대토크를 기록한다.

다만, 랩터는 전고가 20mm가 더 높고 전장이 70mm가 더 길며, 차폭 또한 160mm가 더 넓다.

특히 차폭을 달리한 것은 랩터 모델 다이내믹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광폭 타이어를 끼울 수 있도록 휠아치를 키웠기 때문이다.

두 차의 휠베이스는 같아 내부 공간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승차감에서는 다른 면모를 보일 수 있다.

제원상 와일드 트랙은 스탠다드 듀티 서스펜션을, 랩터는 퍼포먼스 서스펜션을 달았다.

게다가 랩터 모델은 오토 스타트 스탑 기능이 포함돼 있지 않다. 승차감을 감안한 과감한 선택이다.

와일드 트랙과 랩터는 연비에 큰 차이를 보인다. 와일드 트랙의 경우 복합 연비가 10.0km/L인데, 랩터는 8.9km/L에 불과하다. 한 등급의 차이다.

3.6 가솔린 엔진을 얹고 8.1~8.3km/L를 기록하는 쉐보레 콜로라도와 비교하면 두 모델 괜찮은 편에 속한다.

참고로 콜로라도는 8단 변속기를 사용하지만, 레인저는 10단 변속기다. 이 역시 연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만약 먼 거리를 주행하겠다고 하면 포드 레인저 모델이 유리한 포지션이다.

포드 레인저 와일드 트랙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포드 레인저 와일드 트랙 ⓒ 민주신문 육동윤 기자

◇ 캠핑 분위기 못냈지만 운치는 굿 

시승날 속초에 도착했지만 해는 떨어지고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기껏 캠핑 분위기를 낼 요량으로 나름 모아왔던 오만가지 용품들을 트럭배드에 올렸건만 정작 꺼낼 기회는 없었다.

당초 계획은 한적한 해변에 차를 세우고 트럭배드 위에 조그만 텐트를 얹어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그늘이자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 그 앞에 간이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즐기려했지만 타프를 챙겨오지 않아 후회가 컸다.  

모든 계획이 물 건너갔지만 거침없이 몰아치는 속초 바다의 파도를 보는 운치는 챙겼다. 

날씨는 흐렸지만 동쪽으로 오는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서양을 대표하는 차가 개척할 동쪽 땅을 찾아낸 것처럼 반가웠다.

◇ 편리한 기능 빠짐없이 넣어둬

속초행은 당일 숙소도 구하기도 힘든 터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나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레인저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조향을 거들었다.

 

픽업트럭이라 헤비듀티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트랜드에 따라 전자식 주행 안전장치, 차선 유지 시스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충돌 방지 및 힐 디센트 컨트롤, 액티브 브레이킹 등 안전에 직결된 사양들은 빠짐없이 포함했다.

실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드 싱크3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현지화에 살짝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아틀란을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은 그나마 쓸만했다.

유선을 통해 연결할 수 있는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도 있지만, 마이크로가 아닌 일반 USB 타입을 쓰고 있다는 점은 아쉬웠다.

실내에 사용된 소재는 값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느낌이지만 콜로라도와 비교하면 좀 더 낫다.

픽업트럭이 생긴 것과는 달리 편안함이 인상적인 건 사실이지만, 장거리 주행에는 두 모델이 모두 힘든 건 사실이다.

뒷좌석 협소함도 그렇고 큰 차체로 인한 고난이도 운전 부담감도 은근히 피로감을 높인다.

SUV와 실질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물론 운전석에서는 그 피로감이 덜할 수는 있다.

가격이 콜로라도보다 다소 비싼 것이 흠이지만 기름 퍼먹는 3.6 가솔린 엔진 대신 효율성이 높은 2.0 디젤 엔진을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경제적으로 따지면 국내 곳곳에 숨어 있는 오지 탐험이라든가 원거리 여행을 위해서는 콜로라도보다는 포드 레인저가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픽업트럭 매력에 꽂혔다면 두 모델이 서로 다른 성향을 지녀 선택하는 데 큰 고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향에 맞추는 것이다.

헤비듀티 보다는 여기에 2856만 원부터 시작하는 쌍용 렉스턴 스포츠 칸을 집어넣는다면 또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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