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중고차 시장 투명성 강화"..업계 "대량 실직"
정치권 참여 상생위원회 '무산'
중기부 심의위서 진출 허용할 듯
전문가 "초기 진입장벽 높여야"
[경향신문]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좀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소비자 편익’과 ‘골목상권 보호’라는 공익적 가치가 충돌하는 난제인 데다, 최근 어렵게 마련한 소통창구까지 닫히면서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24일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를 중기부 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앞서 정부는 완성차업계와 중고차업계, 정치권이 모두 참여하는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를 구성, 대기업 진입 시기와 물량 쿼터 등을 중고차업계와 조율한다는 계획이었다. 상생위 참여 조건으로 중기부 심의위를 열지 않는다는 조건까지 내걸었지만, 위원회 발족식 직전 중고차업계가 참여를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중기부 심의위로 안건이 넘어가면 대기업 진출의 장애물이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앞서 동반성장위원회는 2019년 11월 중고차시장에 대한 대기업 진입 제한이 “소비자 편익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부적합 의견을 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중기부 심의위가 동반성장위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완성차업계의 ‘제한없는’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해진다. 대기업 진출의 기대효과는 중고차 시장의 투명성 강화다. 제조업체가 품질을 인증한 중고차를 사고팔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 신뢰가 커지고,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돼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반면 이미 중고차업계에 몸담고 있는 중고차 딜러 등 시장참여자들의 대규모 실직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새로 주인을 찾은 자동차 579만여대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387만4304대가 중고차였다. 지난해 기준 전국 중고차 관련 6000여 사업체에 5만여명이 회원(딜러)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장치 없이 대기업 진입이 시작되면 일자리 상당수가 수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애초 어른과 아이 싸움인 데다 소비자 대다수가 기존 중고차업계를 불신하는 상황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이 내놓은 ‘중고차 시장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됐다’는 응답이 80.5%나 됐다. 대기업 진출 시 쏠림 현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소비자 편익을 증진시키면서도 일자리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접점을 찾기 위해 지난 8개월간 완성차업계와 중고차업계는 전문가 그룹을 통해 물밑 협상을 진행해왔다. 대기업 물량을 연 10% 내로 제한하고, 완성차·중고차협회가 참여하는 중고차협회 설립, 상생 작업을 모니터링하는 상생위원회, 허위매물을 감시하는 클린위원회 설립 등이 초안으로 검토됐다. 그러나 최근 발족식이 취소되면서 모든 논의가 원점으로 회귀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소비자 편익을 고려하면 대기업 진출을 언제까지나 막을 수는 없다”면서 “초기에 진입장벽을 높게 세워 기존 업계의 충격을 완화하고 시간을 벌어 자체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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